김춘수의 무의미시론과 이승훈의 비대상시론은 이상(李箱) 시에 나타난 시의 무의미), 그리고 시의 비대상2)에 대한 인식과 그 궤를 같이한다. 이상, 김춘수, 이승훈 등, 세 시인의 전통시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실험이라는 공통인식은 우선, 시적 대상에 있어서 전통적으로 인식된 자연세계나 일상세계가 시 속에서 전통적 인식으로 드러나지 않고 왜곡되어 나타난다. 이는 바로 객관적 사실을 외면한 것이며 그 시적 표현은 시인 내면 인상에서 비롯한 표현주의적 태도에서 비롯된다.
김춘수의 무의미시론
세 시인의 공통된 인식을 떠나서 먼저 김춘수의 무의미시론을 살펴보면, 無意味라는 단어의 개념은 '의미가 없음'이 아니라 기존의 의미들이 김춘수에게 동일하게 의미있음으로 의미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기존의 의미는 기존질서에 의한 가치 · 판단 · 관념들이며, 이러한 의미를 김춘수는 편견으로 본다. 그러므로 기존의 가치관에 회의를 느껴 이때 무의미란 기존 관념으로서의 의미를 배척한다는 개념이다. 비대상이란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는 상태를 의미하므로 구체적 대상을 포착할 수 없다는 말이다. 자신의 주관적 모색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찾으려는 실험적 자세에서 그의 무의미시론이 탄생하게 된다. 비록 김춘수가 무의미시론을 '새로운 의미찾기'가 아니라, 이미지= 대상이라는 등식으로 '새롭게 대상 마주하기'라고 할지라도, 시가 관념을 담아내는 언어를 매개로 한다는 점에서 그의 무의미시론 역시 의미론에서 제외될 수 없다.
대상에 부여된 의미는 인간이 부여한 의미이기 때문에 대상을 의미화된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대상 그 자체로서 제시할 때 인간에 의해 부여된 의미화가 없어지게 된다. 이때 기존 관념에 반한 무의미에 의한 새로운 의미, 즉 그 대상의 본질을 드러내는 시가 탄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본질 또는 새로움이란 시인의 주관적 인식에 근거하므로, 김춘수가 말한 시의 방법론적 긴장이란 '도덕적 긴장'을 의미하며, 도덕이란 '현실. 자연·사회·삶'에 대한 관념의 질서를 의미할 때, 기존의 도덕을 버리고 새로운 도덕을 모색해야 시의 도덕적 긴장이 가능하므로, 무의미시론에서 나타난 긴장은 불안에 대한 다른 표현이다.
따라서 기존관념을 전통이라고 할 때, 전통적 인식을 무의미하다고 인식함으로써, 시인은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야하며 동시에 새로움을 찾아야한다는 불안에 쌓이게 되는 것이다. 즉 김춘수의 무의미시론은 대상을 인간적 의미부여의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여 대상 그 자체가 지닌 본질로서 순수하게 보자는 비관념의 모색이다. 그러나 시인의 주관에 기인한 도덕적 긴장 역시 시인에 의해 부여된 관념, 또는 의미라는 점에서 김춘수의 무의미시론은 개인적 의미시론으로 고쳐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시론은 대상에 대한 접근방식의 새로움에서 기인한 방법적 긴장이지만, 그 결과는 새로운 의미찾기에 다다를 수 밖에 없다.
디딤돌이 달빛에 젖어 있다. 아내의 한쪽 발이 놓인다. 어디선가 가을 귀뚜라미가 운다. 無狀態의 한없이 먼 곳에 아내는 떠있는 느낌이다.
김춘수, 디딤돌 1 전문
달빛에 젖어있는 디딤돌이나, 그 위에 놓여있는 아내의 한쪽 발에 대한 언술은 새롭게 하기위한 실험 양상과 무관하다. 또 '어디선가 가을 귀뚜라미가 운다' 라는 언술도 일반적 언술방식을 지켰을 뿐이다. 단지 다음 행에서 디딤돌 위에 놓여있는 아내의 발을 통해서, 그 아내가 '무중력상태의 한없이 먼곳에 떠있다' 라고 하여 다소 일반적 상황을 벗어나 있다. 이로써 위 시는 대상에 대한 기존의 접근방식을 깨뜨린 비일상적 언술방식으로서의 무의미시론을 담지하고 있다고 보겠으나, 보다는 일상적 언술방식이 지배적이다.
이와 같은 김춘수의 무의미시론이 대상에서 출발하여 그 대상을 무화하며 새로운 대상으로의 모색을 위한 변증법적 사고에 토대하고 있다면, 이승훈의 비대상시론은 대상이 아니라 비대상에서 출발한다. 그가 말한 비대상은 이미 대상으로 보이는 세계적 현실과 시인이 노래하는 대상이 분명치 않다는 것, 즉 전통적으로 알고 있는 세계는 제대로 드러난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4) 그러므로 이승훈의 비대상시 역시 애매성을 띠게되며 그 애매성은 시인의 내적 충동이나 정서의 표현주의적 태도에서 비롯된다. 김춘수가 '대상-비대상(무의미화)-대상(새로운)'의 변증법적 시적 과정을 보인다면, 이승훈은 '비대상-대상화비대상'의 역설에 의한 끊임없는 반복의 과정을 보인다.
이승훈의 방법적 긴장
이승훈의 방법적 긴장은 김춘수의 '도덕적 긴장'과는 달리 '언어적 긴장'이다. 언어적 긴장이란 '언어가 어떤 대상을 지시할 때 그 대상이 비로소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어버린다'는 인식에서, 그는 자신의 詩作을 끊임없는 절망의 반복적 행위라고 명명한다. 이는 그의 시에 어떤 의미도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하며, 의미란 김춘수의 기존관념으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대상 • 의미를 담아내는 언어가 지닌 지시적 한계성 때문에 시에서 시인이 의도하는 의미가 존재할 수 없다는 데서 비롯된 '의미없음' 인 것이다.
사나이의 팔이 달아나고 한마리 흰 닭이 구 구 구 잃어버린 목을 좇아 달린다. 오 나를 부르는 깊은 命의 겨울 지하실에선더욱 진지하기 위하여 등불을 켜놓고 우린 생각의 따스한 닭들을 키운다. 닭들을 키운다. 새벽마다 쓰라리게 정신의 땅을 판다. 완강한 시간의 사슬이 끊어진 새벽 문지방에서 소리들은 피를 흘린다. 그리고 그것은 하아얀 액체로 변하더니 이윽고 목이 없는 한 마리 흰 닭이 되어 저렇게 많은 아침 햇빛 속을 뒤우뚱거리며 뛰기 시작한다.
이승훈, 事物A 전문
위 시에서 비대상화에 의한 실험양상을 진지한 언술방식, 일상적 언술방식을 파괴한 데서 찾을 수 있다. 비대상의 세계는 어두운 충동들의 세계이며 무의식의 논리를 띤다는 이승훈의 논리에서처럼 이는 곧 비일상적 언술방식으로 표출될 수 있다. 가령 '사나이가 달아나고'가 아니고 '사나이의 팔이 달아난다'고 하거나, '닭이 잃어버린 목을 쫓아 달린다'고 한 어휘 등에서 나타난다. 또 '소리들은 피를 흘린다', '그것은 하아얀 액체로 변하더니 이윽고 목이 없는 한 마리 흰 닭이 되어 저렇게 많은 아침 햇빛 속을 뒤우뚱거리며 뛰기 시작한다' 등에서 사물, 또는 대상에 대한 일상적이며 진지한 언술방식을 파괴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詩와 거울 따라서 두 시인의 시론의 방법적 긴장 중 이승훈의 언어적 데리다의 언어 인식에 가깝고, 김춘수의 도덕적 긴장은 리얼리즘한 모더니즘의 인식과 밀접하다. 물론 시가 언어를 매체로 하기에 김춘수의 도덕적 긴장 또한 언어와 무관하지 않지만 시작(詩정에 있어서 두 시인의 방법적 인식은 다르다는 의미다. 어떻든 수의 도덕적 긴장, 이승훈의 언어적 긴장을 통해서 일상적이며 인 발상에 대한 일탈이라는 실험적 방법을 만날 수 있다.
그것은 아방가르드,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등 현대의 제반 사조가 어떠한 방법으로든 전통에 대한 일탈로서, 부조리한 시대한 부정의 정신을, 그리고 개인의 불안심리를 드러내기 때문이다상과 같이 이상, 김춘수, 이승훈 등은 전통부정으로서, 그리고 가 불안심리에 토대하여 시의 내밀적 해체를 실험하였다면, 송욱, 등은 전쟁으로 폐허화된 50년대의 상황으로 인하여 시의 형식태적 측면 위주의 해체를 실험하였다. 때문에 이상, 김춘수, 이승의 해체에 비하여 송욱, 조향 등은 시의 내밀적 해체에서 보다.
해체의 극명으로 치달은 80년대
시가 역사적 상황이 주는 고통의 무게에 눌려서 해체될 때는 대한 인식적 해체의 양상과는 달리, 시적 대상이 시인의 의식속굴절되거나 창작적 변용을 거치지 않고 현실의 모습. 즉 변화된 현실의 무질서함을 시라는 형식 안에 재수록하는 양상으로 나타이는 80년대의 해체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인데, 그것은 80년대의 정치·사회현실에서 비롯된 파괴된 외관의 재음미를 해시인들이 의도한 결과이다.
즉시에 대한 인식적 변화에 의한 해체가 대상을 드러내는데 표현의 한계에 부딪힌 결과 언어의 변용을 꾀했거나, 전쟁 등에서 비롯된 현대적 삶의 불안정하고 불확정적인 속성을 의도한 심리흐름 등이 주도였다면, 외부 변화에 따른 시의 해체는 시인의 억압된 개인 의식이나, 시를 향한, 그리고 시를 위한 창작적 의식이 제거됐다는 말이다. 그것은 시를 논하기에는 현실의 당면과제가 지나치게 비시적인 현실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상황속에서 주목된 실험양상 중 하나는 '현실의 표절' 또는 '현실의 습득물' 5)에 따른 인유이다. 이는 소재가 바로 작품이 되는 현상이다. 김준오는 이를 예술의 영점화 현상이라고 칭하는데, 즉 제시만 있지 창작적 굴절, 상상력에 의한 표상이 없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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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우, 그대의 표정 앞에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