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란 감성의 집합체이며, 언어라는 도구로 세공된 예술이다. 서정주의 「화사」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감각과 이형기의 「비오는 날」이 선사하는 깊은 여운은 이를 증명한다. 시인은 언어의 창조자가 되어, 감성을 어떻게 시적 공간에 담아낼 것인가를 끊임없이 탐구한다. 「화사」에서의 강렬한 상징성과 「비오는 날」의 절제된 감성이 보여주는 대조는 시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서정주 화사 해설
「花蛇/徐廷柱」
사향 박하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배암......
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몸뚱어리냐.
꽃대님 같다.
너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 내던 달변의 혓바닥이
소리 잃은 채 날름거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늘이다. ……물어뜯어라. 원통히 물어뜯어,
달아나거라. 저놈의 대가리!
돌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사향 방촛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의 아내가 이브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석유 먹은 듯. 石油 먹은 듯…… 가쁜 숨결이야.
바늘에 꼬여 두를까 부다. 꽃대님보다도 아름다운 빛……
클레오파트라의 피 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
고운 입술이다.…..스며라. 배암
우리 순네는 스물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운
입술 ...... 스며라, 배암
-(1936년 「시인부락」 창간호 게재시)
서정주의 고백에 의하면 「화사」는 1936년 여름에 내가 해인사에 묵으면서 어느 날 밤에 쓴 것으로, 그해 11월 『시인부락」이라는 잡지를 내가 편집 겸 발행인이 되어 발행하게 되었을 때 그 창간호에 실었던 것이다. '성적인 분망과 고민과 자학의 열띤 정열이랄까. 몸부림이랄까 그런 것을 담아보려고 했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나로서도 내용상으로 더 말할 것이 없다. 하지만 훌륭한 시인은 그가 사용하는 언어를 조물주보다 더 잘 주무르는 재주를 가졌는가. 서정주의 어떤 시들에 이르면 그런 것을 흔히 발견하게 된다. 가령 「풀리는 한강가에서」라는 시에 나오는 '과부의 무리들' 같은 복수적인 어법이 그것이다.
「화사」의 작품에서도 그러하다. '너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 내던 달변의 혓바닥이'는 뱀을 묘사한 것으로 이해가 가겠는데, 무슨 느닷없이 '우리 할아버지의 아내가 이브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라는 '이브'의 표현인가. 이런 표현들도 하나 어색함이 없이 천연덕스럽게 자리하는 것이 서정주의 시이다. 그리고 또 있다. 연마다 쓰여진 ...... 부호, 그리고 세 개의 도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끝 2연을 또 보라. '클레오파트라의 피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 고운 입술이다. …… 스며라. 배암! 우리 순네는 스무살 색시. 고양이같이 고운 입술 ......스며라, 배암!' 클레오파트라에서 순네까지를 다 포용하는 시적 공간성, 그리고 '스며라'라는 표현이 어찌하여 배암에게 표현될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 보라
이형기 비오는 날 해설
「비오는 날」/이형기
오늘
이 나라에 가을이 오나보다.
노을도 갈앉은
저녁 하늘에
눈먼 우화는 끝났다더라.
한 色 보라로 칠을 하고
길 아닌 천리를
더듬어 가면 .....
푸른 꿈도 한나절 비를 맞으며
꽃잎 지거라.
꽃잎 지거라.
산 너머 산 너머서 네가 오듯
오늘
이 나라에 가을이 오나보다
-(1949년 문예』)
시를 쓰고자 하는 이들은 우선 가능한 한 감성을 많이 지닐 일이다. 감성의 초기 단계를 거치지 않고는 결코 좋은 시를 쓰지 못하리라 확신한다. 감성이란 사물을 만났을 때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온갖 아픔이요. 사랑이다. 희로애락이다. 마음이 가지 않고는 어떤 사물도 우리의 이웃들도 노래할 수 없음을 늘 염두에 둘 일이다. 그런 후에야 구상화에서 추상화의 단계로 옮길 수 있는 그림의 경우와도 마찬가지로 시도 그 어떤 것을 하더라도 안심하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근일 씌어지고 있는 이형기 시의 쉬르적인 경향이라든지 극도의 드라이한 일련의 시들이 성공하고 있는 까닭도 그가 초기에 「비오는 날」에서 보였던 이런 감성의 세계에 누구보다 푹 젖었다 나왔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이 시는 누구보다도 서정주가 잘 보았다. '이형기의 「비오는 날」은 작자의 감홍도 알 수 있고 반남아 그 감흥을 성공시키기도 하였다. 그러나 2연, 3연에는 아직도 무엇인지 조금 덜 연소된 꺼림칙한 것이 무엇인지를 좀더 생각해 보라. 당신만큼 절실하니 처음과 끝을 말할 줄도 아는 이가 중간에 단 한마디라도 미지근한 말을 해서는 안된다.' 나로서도 더할 말이 없다. 단지 '오늘/ 이 나라에 가을이 오나보다'라는 첫 연의 구절이 지극히 평범한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왜 읽는 이들의 가슴에 절실히 닿아오는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시에 있어서 첫 행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는 좋은 예이다. '이 나라에 가을이 오나보다' 의 분위기가 주는 것도 이 시에서는 아주 무시할 수가 없다.
이 시를 지은이가 지금 보면 어떨까마는 '눈물 같은 시를 쓰고 싶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에 거짓이 섞여 있을지라도 눈물 그것만은 참다운 것으로 구슬맺어진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눈물 같은 시를 쓰고 싶다는 것은 나의 소원, 그리고 영이! 당신에게 눈물같은 그 무엇을 느낀다는 것은 나의 사랑 ...... 이라는 당선소감도 여기에 곁들여둔다.
시적 언어와 감성의 조화
화사와 비오는 날을 통해 본 시의 본질 서정주의 「화사」와 이형기의 「비오는 날」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시적 언어의 본질과 감성의 깊이를 탐구한다. 「화사」는 관능적이고 강렬한 이미지로 독자의 감각을 자극하며, 언어의 물성을 넘어선 상징적 세계를 열어젖힌다.
반면, 「비오는 날」은 절제된 언어와 일상적 감각 속에서 삶의 깊은 울림을 전달한다. 두 시는 모두 독특한 방식으로 인간의 내면에 스며드는 감정의 폭을 드러내며, 시가 어떻게 언어를 통해 우리의 감성을 확장시킬 수 있는지 보여준다. 시는 단순히 언어의 조합이 아니라, 그것이 지닌 여백과 울림을 통해 독자와 공명하는 예술이다.
서정주가 언어를 다루는 탁월한 기술과 이형기가 감성에 젖어 표현한 세계는 시인의 감각과 독자의 상상력을 잇는 다리가 된다. 결국, 시는 우리의 삶 속에 있는 무한한 감정을 발견하고 그것을 노래로 승화시키는 도구임을, 이 두 작품은 다시금 우리에게 깨닫게 해준다. 시인의 언어와 감성은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공명을 이루며, 독자에게는 잊히지 않는 울림으로 남는다. 이러한 시적 체험은 곧,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가장 아름다운 예술적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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