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는 한국 문학의 전통을 대표하는 독특한 서정 장르다. 고려 말기에 태어나 조선 시대를 거쳐 현대까지 이어져 오면서, 시대적 변화에 따라 형태와 내용에서 다양한 변화를 겪었다. 사대부 계층의 문학으로 시작된 시조가 현대에도 명맥을 이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한, 전통적 시조와 현대시조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존재할까?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시조라는 장르가 품고 있는 본질과 그 변천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조의 본질과 고시조의 특징
사대부를 주 담당층으로 했던 시조가 사대부층이 사라진 현대에 와서도 그 맥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시사하는가. 현대에서는 시조가 아니고, 왜 현대시조라고 하는가. 이것은 시조와 현대 시조가 다르다는 사실이 이미 전제되어 있다는 말이 되는데, 그렇다면 시조와 현대시조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시조 연구가들은 시대에 따라서 시조를 고시조, 개화(개화기)시조, 신시조, 근대시조, 현대시조로 구분하는데, 그 구분은 단순히 시대에 따라서 존재하는 시조라는 의미를 넘어서서 그 시대의 속성을 담지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한다면, 우리가 문학사에서 시조라고 칭하는 장르는 제반 시대의 원형 시조로서 고시조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따라서 현대시조의 장르 특성을 논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고시조에 대한 장르의 특성이 파악되어야 한다.
장르의 특성이란 단지 형식적인 측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장르는 그 장르가 생산된 시대상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시조의 장르 특성을 통해서 시조의 시대적 의미와 함께 시조가 무엇인지에 대한 해명이 자연스레 이루어질 것이다.
고시조의 형식과 세계관, 그리고 변모의 시작
고려후기의 불교적 말폐가 야기한 모순과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왕조를 건설한 사대부계층이 정치와 문화를 주도해 간 시대의 중심적인 서정장르로서 시조는, 그 형식적 구조에 있어서는 4음보격의 율격구조를 갖는 3장 형태의 짧은 노래이며, 종장 첫구에 落句를 두고 서정적 완결을 종장에서 기하기 위해 초. 중장과는 약간 변화된 율격을 보이는 것을 특징으로 하며, 거기 투영된 세계관은 유가적 세계관이 중심을 이룬다.
따라서 시조는 사상적 기반의 중심담당층을 사대부층에 두고 있고, 그들의 가악관이 공자의 음악관에 기초함으로써 유가적 세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사대부란 治者.學者.人格者로서의 자질을 고루 갖추어 君子의 道를 수행할 수 있어야하는 것이 시대의 당위성이었듯이. 시조는 군자의 도를 추구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일 수도 있었다.
즉 고시조는 유가적 세계관에 기초한 의식의 공동체를 추구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문화적 집합성이 나타난 시가였다. 유가적 세계관이란 인간도리의 지침서나 다름없으므로 시조에는 계몽의도가 암암리에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훈민가><오륜가>를 비롯한 <오우가> 등에서 확인된다. <오우가>를 비롯하여 자연예찬의 시조는 진선미의 전범을 자연에 두고있는 것을 의미하므로, 이는 세속의 인간을 향하여 은연중에 탈세속을 계몽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러한 시조의 중심을 조금씩 파괴하기 시작한 것이 엇시조이며, 조선말기에서는 익명의 사설시조가 등장하여 음담패설을 표출하기 위한 키치적 언어가 팽배하는 등, 시조의 정형미와 공동체적 가치관이 도전을 받게 된다. 사설시조의 미학은 절제와 정형미의 평시조에 대립되어 해학의 미학과 풀이성의 주조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면 고시조 그 이후 시조는 엇시조와 사설시조에 의해 해체되면서 동시에 역사의 변화에 따라서 어떤 양상으로 변화되었는가?
개화공간의 시조와 그 변모양상
비교문학연구가인 두리친에 의하면 외국문화의 수용현상은 그 문학사회의 전성기와 쇠퇴기에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하는데, 그는 수용현상을 모방적 수용과 창조적 수용으로 나누고 있다. 창조적 수용을 위한 전제 조건으로 객관적 요인과 주관적 요인으로 구분하면서, 객관적 요인은 자국문학의 진행경향, 문학장르, 전통 등이며, 주관적 요인은 작가의 인간성, 예술적 개성, 독창성 등이라고 한다. 개화공간은 이와 같은 논리가 적용될 수 있는 문학사회의 쇠퇴기였던 것이다. 개화공간은 조선조 문화가 쇠퇴해가는 동시에 외국문화의 수용을 향한 개방된 공간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지니는데, 쇠퇴기로서 개화공간의 전통장르는 신흥장르의 수용에 따라 변형의 길을 걷게 된다.
따라서 개화공간의 시가는 전통장르와 신흥장르가 서로 충돌하면서 전통장르는 쇠퇴. 변형되지만, 반면 근대 자유시의 형성으로서 신흥장르가 탄생하는 과도기적 성격으로 특징 지어진다. 전통장르와 신흥장르의 충돌은 주로 가사와 창가, 민요와 창가, 시조와 창가, 언문풍월과 창가사이에서 빚어졌다.
또한 신흥장르와의 충돌 뿐만 아니라, 전통장르들도 그 안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음으로써 장르의 고유성이 파괴되었다. 예를 들면 가사와 시조, 가사와 민요, 시조와 민요, 가사와 언문풍월 등의 상호작용으로 장르의 고유성이 파괴되었던 것이다. 특히 개화공간은 시가와 시가 혼재한다는 점으로도 특징적인데, 여기에는 인쇄매체의 등장이 기여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시가들이 歌로서 기능 뿐만 아니라, 詩의 기능으로 변모되어 갔으며, 시조도 예외일수 없었던 것이다.
또 근대 자유시 형성에 있어서 가장 긴밀한 영향관계에 있는 전통장르를 흔히 사설시조라고 하는데, 이는 사설시조가 평시조의 정형성을 파괴했듯이, 그 파괴의 자유지향성이 근대 자유시의 형성과 연계됐다는 관점이다. 일견 타당한 견해로 보이면서도 부분적으로는 장르의 특성을 충분히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가령근대 자유시의 계몽주도형, 또는 서정지향의 특성과 사설시조의 그것을 비교할 때, 그 차이는 엄밀히 드러난다. 담겨있는 세계관의 차이뿐만이 아니라, 시적 자아가 지향하는 상상력의 공간 역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으므로, 단지 형태의 변화에서 자유를 찾는다는 것은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
자유시의 자유로운 형태적 측면 뿐만이 아니라, 그 세계관 및 내밀한 서정성에 비추어 자유시를 파악할 때 그 영향관계는 오히려 평시조와 더 가깝다. 이와 같이 개화공간에서 시조는 제반 장르와의 상호작용으로 그 정형성이 어떤 형태로든 파괴되어 새로운 시조가 탄생되는데, 내용에서도 애국 계몽 및 개화의 목적의도에 의해 주조되었다. 즉 전통적 세계관의 수호와 새로운 문화를 향한 개화에 대한 열의와 수용에 의해 정치·문화의 담당층9) 간에 충돌. 긴장 • 갈등의 관계가 형성되면서, 시조를 비롯한 전통 장르가 담당층의 변모 및 양식상의 변모를 겪게 되었던 것이다. 그 주된 변모는 시적 주체와 대상간의 융합관계가 해체된 서정성 거시의 양상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장르의 기능 및 탄생이 역사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개화공간에서 전통장르의 형식파괴를 장르의 실험을 위한 파괴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 실험성이 위주가 될 때 그 장르의 주체는 거시되고 실험이라는 목적의도만이 돌출된다. 이때 시는 실패하게 되며, 새로움의 실험은 시를 시답게 하지 못하고 시 이전이나 이후의 상태에 머물게 하고 만다. 그러나 전통장르간의 영향관계로 나타난 실험성은 새로운 미학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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