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이란 말을 들을 때마다 두 가지 상반된 느낌을 갖게 마련이다. 하나는 곰팡이 냄새나는 낡은 이야기들이고, 다른 하나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삶의 진실을 가리킨다. 고전에 대한 서로 달라보이는 두 가지 느낌은 실상 같은 뜻의 반대 표현일 뿐이다.
제환공과 윤편의 대화 속 숨겨진 통찰
고전에 대한 고사로는 제환공과 윤편의 대화가 인구에 회자된다. 춘추전국시대의 제나라 환공이라는 임금은 어느날 대궐을 둘러보다가 윤편이라는 목수가 수레바퀴를 고치는 걸 보게 되었다. 환공은 수레바퀴의 바퀴살이며 축을 가로질러 끼는 구멍 같은 걸 새삼스레 눈여겨 보았다. 노상 수레를 타고 다녔지만, 수레를 굴리는 바퀴에 관심을 가진 적은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목수의 재빠른 손놀림이며 나뭇덩어리가 다듬어지는 과정이 신기로왔지만, 한참 들여다보면서는 시들해지고 말았다. 비슷한 과정의 되풀이였던 것이다. 환공은 제자리에 돌아가 책이나 보고자 하였다.
이번에는 윤편이 일을 잠시 쉬더니 환공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윤편은 문득 궁금증이 생긴 듯, 환공에게 여쭈었다. "임금께서 보시는 책은 어떤 겁니까?" 환공은 무료하기 그지없던 차에 윤편의 질문을 받고, 시덥잖은 어투로 대거리를 해 주었다. "옛 성인들의 말씀을 적어놓은 책이다." 그러자 윤편은 맹랑하게 그 말을 받았다. "그렇다면 찌꺼기 책이군요." "그렇게 생각한 까닭을 자세히 밝혀라." 윤편의 말인즉, 성인은 비록 훌륭한 분이지만 그 생각을 낱낱이 옮길 수는 없다. 따라서 그 중 중요한 줄거리만 사람들에게 전해지지만, 그 줄거리를 들받침해 줄 실마리나 과정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만다. 그렇다해서 누가 성인을 대신해 그 뜻을 풀이해 줄 수도 없다. 헌즉, 성인의 본뜻은 숨겨진 채 줄기만 남게 되니 그 뜻조차 알 길이 없는 소리란 결국 찌꺼기와 다를 것 없다는 생각이었다. 환공은 그의 말을 나무랄 수가 없다. 윤편의 말이 옳게도 생각되었던 것이다. 하기는 환공 자신도 성인의 말이라는 것때문에 틈틈이 읽어보곤 했지만, 그 말대로 마음가짐이나 몸가짐을 바룰 자신도 없었고, 대개는 그 말의 깊은 뜻을 새겨듣고자 해도 귀가 열리지 않았던 터였다.
고전이 시대를 넘어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이유
환공과 윤편의 대화를 따르자면, 고전은 곰팡이 냄새나는 낡은 이야기들어 지나지 않는다. 뜻도 모를 소리를 단지 고전이라는 이름때문에 읽는다는 것은 사실 시간의 낭비로 정신의 소모일 뿐이다. 하지만 역으로 새겨보자. 그 뜻도 모를 소리가 자신의 삶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버려 둔다면, 우리 삶의 물꼬를 터 주는 힘. 그 물꼬를 흘러가는 물의 힘은 어디서 누구에게 배운다는 것인가. 고전이란 결코 한 사람의 독창적인 경험물이 아니다. 기명이든 무기명이든 그것은 저자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삶의 바다에 그물을 던져 낚아올린 귀중한 수확물이다. 그 수확물이 저자에 의해 분류되고 분석되어 우리 삶에 필요한 자양분으로 정리된 것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동물이다. 두 사람 이상으로 성립된 사회의 구성원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기 위해선 언어가 있고 문자가 있어야 한다. 그 언어와 문자란 무엇인가. 나나 너의 삶에 있어서 알고 있어야 할 정보를 서로 주고받는 수단이다. 그것은 쌀값이나 고기값과 같은 기초 생활 정보에서부터 음악이나 미술과 같은 정서 생활 정보를 망라하게 마련이다. 문화나 문명의 발전은 바로 정보의 고급화요. 계통화를 뜻한다. 그 발전의 마디마디가 바꾸어 말하면 고전이다. 따라서 고전이란 어떤 시대적 저작물에 한정되지 않는다. 2천년 전의 저작물도 고전이요. 50년 전, 백년 전의 저작물도 고전이 된다. 고전의 가름은 시기가 아니라 가치이기 때문이다. 우리 삶을 풍요하고 윤택하게 바꿀 수 있는 고급 정보의 기록체다. 인류사 이래 많은 나라.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정보를 기록으로 남겨왔다. 그것은 입에서 입으로 암송되어 오기도 했고, 문자로 정리돼 전해지기도 했다. 그 수많은 기록은 오랜 역사를 거쳐오는 동안 끊임없는 가치 평가에 의해 분류되고 선택되게 마련이다. 단편적인 정보는 종합되고, 종합적인 자료는 체계화되고, 한 시대에 의해 구성된 정보는 여러 시대에 걸쳐 해체되고 분화될 뿐 아니라, 여러 시대에 걸쳐 생성되고 발전되기도 한다. 그것은 바꾸어 말하면 버려지고 골라짐의 되풀이이다. 그 되풀이 끝에 우리에게 남겨진 고전이란 정보는 수많은 사람들의 귀중한 협동 작업에 의해 지금의 생명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고전의 생명력
고전의 생명력은 독자적이다. 지금 우리가 그것을 거들떠보지 않는다해서 고전의 생명력이 상실되지는 않는다. 고전의 생명력이 뿌리내린 우리 삶이란 우리도 아직 그 전모를 밝힐 수 없는 수수께끼와 같다. 우리가 가지로 갈라지고 잎으로 피어나고 열매를 맺는 과정은 지나가기 전에는 알 수 없는 미지의 여정이다. 누가 살아보지 않은 삶을 알 수 있는가. 점장이의 영감도. 오랜 통계 정보에 의한 과학도 다가올 삶의 과정을 우리에게 그대로 보여 줄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한 알의 씨가 되어 떨어진 땅의 정보. 우리의 실뿌리가 뻗어 나가야 할 물길의 정보, 이윽고 땅 위로 솟아오르면서 만나야 할 비와 눈, 햇빛과 바람의 정보를 미리 알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생존의 길이 아닐 수 없다. 고전이란 바로 우리 삶의 씨앗들이 한 번쯤 터를 잡고 뿌리내렸던 땀과 그 자연에 관한 정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물론 먹고 사는 일이 아니다. 동물적 삶의 수단이 아니다. 허나 동물에서 인간으로 바뀌는 길. 문화적 삶으로 바뀌는 길의 통과의례로서 우리는 그러한 고전과 만나야만 한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옳고 바른 삶인가. 여름날의 뜨거운 햇볕과 가을날의 서늘한 바람의 뜻은 무엇인가. 사람들이 서로 만나서 사랑하고 싸우고 죽이는 까닭은 무엇인가. 자연의 변화는 무엇이고 인간의 존재는 무엇인가. 고전은 수레를 만들고 고치는 윤편이나, 오로지 권력밖에는 관심이 없었던 제환공에게는 찌거기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삶의 내일을 자기 것으로 갖고 싶고, 기쁨과 고마움으로 나날을 살려는 자에겐 수수께끼를 하나씩 풀어줄 수 있는 답안집이 될 수 있다.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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