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란 곧 삶의 표현이다. 따라서 시를 공부한다는 것은 스스로의 삶을 향상시키는 일에 다름아니다. 삶이란 무엇인가. 그 삶의 중심을 꿰뚫어보고 그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힘의 원천으로 나는 예술을 자주 거론한다. 다시 말해 시공부를 하기 위해 시를 읽고 배우고 느끼는 일도 중요하지만 같은 뿌리라 할 수 있는 음악이며 미술과 같은 인접 예술과의 만남이 없어서는 안된다.
어떤 예술이 중요한가
어떤 예술이 그에게 중요하느냐에는 개인차가 있다. 내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그림을 들 수 있다. 그림을 통해서 내 영혼이 새롭게 다시 태어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둣가를 덮어버리고 박물관을 덮어버리고 골짜구니를 덮어버리고 국회의사당을 덮어버리고, 바닷물이 출렁이는 만을 덮어버리고, 이렇듯 천으로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어느 서양화가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러나 '야아. 굉장한 사람이구나' 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오게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그 스케일의 웅대함이며 발상의 신선함 때문이지 그가 보여준 이상한 그림의 결과물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었다. 서양의 화가들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화가 중에도 그러한 식의 시도를 하는 사람은 많다.
회화예술의 발전은 캔버스라는 평면에서 입체로, 입체에서 설치 · 환경으로까지 그 외연을 넓히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캔버스를 떠나지 않은 그림. 감동할 수 있게 하는 그림을 좋아할 뿐이다. 박물관에 걸린 그림. 거실에 걸 수 있는 그림. 그림책에서 볼 수 있는 그림을 좋아한다. 자연 그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그림보다는 자연을 어느 틀 속에 옮겨놓은 그림을 좋아한다. 그리하여 거기 캔버스 안에 자연이 있고 사람이 있는 그림을 좋아한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너무나 그러한 그림에만 익숙해 있기 때문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내가 보고 즐기고 아름다움을 느끼고 감동에 사로잡히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그림들이 그러한 그림들이니 하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유감스러운 일은 그러한 그림들을 내가 만날 수 있었던 길이 오직 그림책에서나 가능하였다는 사실이다.
원작의 감흥에 대한 생각
그러나 나는 또한 그림책을 통하여 그러한 그림을 보았던 것을 오히려 고맙게 생각하기도 한다. 복사된 그림책에서 그들의 정신을 만났기 망정이지 그들의 작품과 실제로 만났을 때 과연 내게 돌아온 값이 무엇일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고 꽤 오랜 뒤에 나는 유럽과 미국의 박물관이며 미술관에서 수많은 명화를 대했지만 원작의 감흥은 그림책을 보았을 때보다 훨씬 뒤떨어지기 일쑤였다. 그것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쫓기듯이 아무렇게나 보게 되는 원작과 달리 그림책의 인쇄물은 원작을 충실하게 전달할 수 있는 조명이나 위치와 같은 여러 조건을 감안했기 때문이다.
예술에 처음 눈을 뜨던 열 여섯 살때부터 그림책을 들여다보는 즐거움은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나만의 것이었다. 우연히 책방에 들려 펼쳐보게 된 한 권의 그림책은 나로 하여금 또 다른 그림책을 끝없이 만나게 하였던 것이다. 내가 처음 만난 그림책은 서양 화가의 것이었다.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도 고호거나 샤갈의 것이었으리라. 지금도 그러하지만 저들 서양 화가들의 그림책은 비록 일본에서 만들어진 것이긴 하지만 어느 책방에서나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우리 나라 화가들의 그림책을 구하기란 60. 70년대만 해도 그리 쉽지 않았다).
따라서 나는 아주 당연하게 저들 서양화가들의 그림책에 기울게 되었다. 그림책을 펼쳐 그들의 그림을 한 장 한 장 들여다보던 그 처음의 감동을 지금껏 나는 잊지 못한다.
그때까지 고작 혼자 있는 시간이면 지도책을 펴놓고 환상의 여행을 즐기던 나로서는 전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세계가 거기 있었다. 마치 전기와 같은 충격에 몸을 떨어야 했다. 섬광과 같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영혼의 그림자를 하염없이 뒤쫓거나 이 세상의 것은 아닌 성싶은 화음에 귀기울이기 일쑤였다.
화가들이 꿈꾸었던 풍경이 내 것으로 바뀌고 그들이 꾸미는 이야기 속에 내가 나타나며 그들의 시가 내 가슴의 밑바닥에 닻을 내리게 되었다. 마르크 샤갈이 무엇을 그림에 그렸고 고호가 왜 귀를 자른 자화상을 그려야 했는지, 끌레의 저 우주의 식물이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를 단숨에 알아차릴 것만 같았던 그 기쁨의 그물에서 나는 끝없는 열락을 맛보았다.
화가들이 그들의 그림 속에 시를 숨쉬게 하고 시가 뿌리내리게 하며 시의 무성한 잎을 자랑하는 동안 치기어린 나의 시적 상상력이 만들어내었던 나의 날개는 햇빛을 본 밀랍의 그것인양 녹아버리고 어떤 것이라도 보아낼 수 있었던 것으로 믿었던 나의 시력은 장님의 그것인양 쓸모가 없어지곤 하였다. 그것은 실로 엄청난 개성의 압도였다.
그러나 그 힘은 오히려 빈약한 나의 상상력에 매질을 가하고 앞을 보지 못하는 내게 새벽의 길을 일러주는 촉매의 구실을 해주었다. 그로부터 마치 경전과 같은 외경심과 몰약과 같은 도취감을 불러일으켜주는 서양의 그림책들은 나로 하여금 저들 개성의 화엄이 이룩한 영원한 생명력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집념을 가르쳐 주었고, 환상의 식물지에서인양 스스로 자라서 사라지기를 무한히 되풀이하는 인내를 배우게 하였다.
그것은 실로 내 삶의 성숙기에 그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귀중한 자양이었다. 이렇게 저들 서양화가들의 그림책에서 외경과 도취의 이중주를 경험한 나는 서서히 동양화가들의 그림에도 눈뜨게 되었다.
그리고 그림이란 것이 가슴에 폭풍처럼 휘몰아쳐오는 충격과 끝없이 뛰어가는 약동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만 알았던 나는 또 다른 세계에 발을 디뎌나가면서 그림이 지닌 엄청난 힘을 온몸으로 실감하게 되었다.
동양의 화가들이 보여주는 침묵의 세계에서 자연과 화가의 만남이 꾸며지거나 계획되어지지 않은 순수한 우연이며 그러한 우연을 위한 단련이 얼마만한 것인가를 체득케 되었다.
동양의 그림들에 관하여
한무더기의 괴석에서 생명의 힘이 무엇임을 깨닫는가 하면 아무렇게나 뻗어나간 대나무나 난초가 바로 하나의 정신이 이룩한 한계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한계는 마치 경악과 같은 감동에 나를 밀어붙이는 힘 그 자체였다. 「세한도(歲寒圖)」의 얼어붙은 천지를 바라볼 때, 팔대산인의 천하를 내려다보는 새를 바라볼 때, 나는 정말이지 그림의 힘이 그렇게까지 위대할 수 있다는 것에 전율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동양의 그림들은 내게 예술이란 바로 무엇인가를 침묵 속에 가르쳐 주었고. 상상력이란 무엇인가를 그 여백 속에 보여주었다. 내가 이렇게 시단의 한 귀퉁이나마 발을 딛고 시를 써낼 수 있었던 것은 실로 그림책을 들여다 보면서 키운 조그마한 힘 때문이리라. 그들의 그림책을 들여다 보는 동안 나는 내가 가야 할 길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하였고 저들과 같이 나도 하나의 형체를 만들어 보아야겠다는 의욕에 불탔다. 그리하여 누구라도 그것을 꽃이라 부를 수 있고 나아가 아무개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그러한 것을 만들어 보자고 스스로 다짐하였던 것이다. 아직도 나는 그러한 성취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것이 오로지 내게 주어진 길임을 한시도 잊을 수는 없다.
이 무렵의 시가 내 시세계에 있어서는 하나의 갈등기였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말하자면 동쪽과 서쪽 두 세계가 한데 뒤섞여 나를 압도하던 시기였다. 이 무렵에 나는 이미 장자시 33편을 써내었는데, 그때 역시 같은 징후에 시달렸었다. 서로 다른 두 세계를 하나의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내 스스로의 정신을 단련시켜야만 했었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어쩔 수 없이 나는 한쪽을 택해야만 하는 패배감에 사로잡히기 시작했고, 그것은 더욱 나로 하여금 마치 광증처럼 시에 매달리게 하였다. 아마도 내지나간 날에 있어 이 무렵(1969년 경)처럼 가장 많이 시를 쓴 적은 그 전에도 후에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어쨌든 나는 자연스럽게 동쪽을 택했고, 하나를 버리고 새로이 바라보는 이 세계는 또 다른 의미에서 광대하기만 하였다. 그 기댈 곳 없는 벌판에서 내가 딛기 시작한 걸음마는 사뭇 위태로운 것이지만, 나는 계속해서 한눈 팔지 않고 그 길을 걷기로 했고, 아직도 그 길은 끝이 날 성싶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새로이 한 세계를 택함으로써, 아니 새 세계를 걸으면서 깨달은 것은 동과 서의 특성을 나름대로 요약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해 환상과 정신이었다.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바라보이는 서쪽은 환상 그것이었고, 동쪽은 정신 그것이었다. 사람의 상상력이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는 것이 서쪽에서 내가 배웠던 점이라면, 동쪽에서는 정신이야말로 사람의 세계와 사람이 없는 세계를 이어줄 수 있는 유일한 통로라는 자각을 얻었다. 이러한 내 나름의 정리는 시에 대한 내 생각을 근본적으로 뒤바꾸게 된 계기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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