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서 그 소재를 취하여 뉴스의 다각성을 제시하는 차원에 머무르고 있다. 창작을 향한 굴절, 또는 상상력에 의한 표상없이 신문에 보도된 현실의 한 단면을 시의 틀에 기대어 재수록한 것이다.
특히 일기 예보와 전쟁상황에 대한 뉴스를 주로 제시한 것으로만 볼 수 있지만, 그러나 그 일기 예보 중에서도 '흐림, 짙은 안개, 비, 눈, 폭설' 등 어두운 이미지가 강화된 일기 내용이거나, '레이건 국방비증액, 미테랑 무기 판매, 波 수천명 검거' 등 전쟁관련 상황의 뉴스 등을 위주로 제시하여 그 이면에 시인이 의도한 현실 부정의 정신을 함유하고 있다. 즉 시를 향한 창작적 상상력은 제거됐지만, 현실의 습득물을 통해서 그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을 환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해체가 단순히 해체를 위한 실험의 극명함에서 나타난 것이 아니라. 현실이 빚어낸 결과라는 사실을 재삼 확인시킨다.
상품광고 실험시
여자가 간다 비유는 낡아도낡을 수 없는 生처럼 원피스를 입고 여자가 간다 옷 사이로 간다 밑에도 입고 TV 광고에 나오는 논노가 간다 가고 난 자리는 한 物物이 지워지고 혼자 남은 땅이 온몸으로 부푼다 뱅뱅이 간다 뿅뿅이 간다 동그랗게 부풀어오르는 땅을 제자리로 내리며 길표양말이 간다 아랫도리가 아랫도리와 같이 간다윗도리가 흔들간다 차가 식식대며 간다 빈혈성 오후가 말갛게 깔리고 여자가 간다 그 사이를 헤집고 원피스를 입고
오규원, 원피스 전문
오규원의 시는 상품광고를 인유하여 상품이 바로 인간의 역할을 대신하게 하고 있다. '여자가 간다 옷 사이로 간다'에서 '옷'은 바로'여자', 또는 '인간'에 대한 비유이며, '논노가 간다'에서도 '논노제품을 입은 여자'를 지시하기 위하여 상표명을 의인화하고 있다. 이외에도 '길표양말이 간다 아랫도리가/아랫도리와 같이 간다'에서는 유기체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분해하여, 부분으로 전체를 지시하게 하며, 동시에 그 부분 역시 부분의 역할에 충실하게 하고 있다. 산업중심의, 또는 상품중심의 소비시대에 인간은 그 소비품의 소비를 위한 그릇으로서의 역할이라는 인식을 볼 수 있다. 즉 상품중심의 시대상을 그 상품명으로 제시하여 인간화 시킴으로써 진지한 언술방식을 해체하여 현대시의 실험적 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말더듬 형태 수다 형태 실험시
이외에도 말더듬의 형태와 수다의 형태에 의한 실험시가 80년대에 새롭게 등장한다. 말을 더듬은 양식이나 수다의 양식은 시에 있어서 표현의 간결 내지 압축에 대한 해체로서 말 늘이기에 해당한다. 말을 더듬은 모양을 시화하기 위해서는 더듬은 만큼 글자가 늘어나며, 수다란 부연 설명이 필요치 않듯이 장황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양상은 일그러진 현대 삶의 한 단면을 과장하여 보여주는 실험양식이다. 즉 중심해체의 양상에서 비롯된, 또는 삶의 진실이 왜곡된 상황에서 빚어진 현실 제시의 실험적 양태인 것이다.
소 소름이 끼쳐 터 텅빈 도시
아니 우 웃는 소리야 끝내는
끝내는 미 미쳐 버릴지 모른다
우우 보우트 피플이여, 텅빈 세계여
나는 부 부인할 것이다.
이승하, 뭉크와 함께 일부
이승하는 위 시에서 동일어의 반복과 말더듬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동일어의 반복과 말더듬의 형태는 그 말에 대한 강조의 효과와 더불어 말을 잃어버린, 또는 진실을 잃어버린 현실의 한 양태를 제시하는 효과를 갖는다. 이와 같이 왜곡된 현실을 습득하여 제시한 해체의 시들은 현실초월을 향한 창조적 상상의 세계에 토대한 것이 아니란 점에서, 또는 시의 내밀성을 향한 창조의 세계에 토대한 것이 아니란 점에서 시의 전통적 양식을 해체하고 있는 것이다.
진지한 일상적 언술방식을 해체하여 말더듬 및 수다의 언술방식에 토대한 시들은 형태적 측면에서도 효과를 제시하는데, 시각적 효과를 의도한 형태시의 유래는 20세기 초 회화와의 공동 전선으로 미래파에 의해서 나타났고, 입체파에 의해서 크게 유행하였다. 형태적 효과를 위한 의도가 확장된 경우의 시는 시 장르 자체를 벗어나고자 하는 의식으로 보이기도 한다. 여기에는 삽화를 도입한다거나 음계를 넣어서 멜로디를 직접 제시하기도 하여 시형식을 일그러뜨리는데, 그것에 의한 시적 효과 또한 희극적이다. 희극성은 해체시, 그리고 특히 80년대 해체시의 공통된 성격이며, 동시에 모든 실험시에 내재된 공통성으로도 보인다. 그것은 비극적 현실 앞에서 탄생한, 즉 시의 외부 변화에 의해 필연화된 실험양상으로, 그 시적 결과가 희극성을 창조해 내기 때문이다.
80년대 해체시
그렇다고하여 80년대 해체시가 난해하지는 않다. 독자는 그 시의 내용을 이미 현실의 각 매체 속에서 보아왔기 때문에 낯익은 것이다. 이는 또 시를 위한 시적 모색이라기 보다는 현실에 대한 비판의 기능이 앞선 시적 대응 방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라는 전통적 장르 인식에서 벗어날 수 없으므로 시의 틀 속에서 현실을 설명하지는 않고 제시하며, 어떠한 형태로든 암시성, 애매성을 견지하고 있다. 똑같은 내용이라 할지라도 신문광고 TV를 통해서 받아들이는 것과 시장르를 통해서 접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 내용. 또는 사건에 대한 보고자의 의도가 다르기 때문인 것이다.
따라서 다양한 방법에 의해 실험되는 현대시로서 실험시는 시를 향한 인식적 해체와 사회현실에서 기인하는 외부 해체의 두 갈래의 요인에 의해 주도된다. 그렇다하여 이 두 요인이 정확한 선을 그으면서 분류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시인의 의식구조는 현실과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즉 전통적 구조의 시에 대한 해체를 위한 인식은 장르에 대한 자유로움에서 추구되기도 하지만, 그 자유로운 형식을 향한 시인의 의식 역시 현실에 토대되어 비롯된다는 말이다.
비록 실험의 자세가 시의 시다움을 저해하는 극명성까지 치달은다고 해도, 즉 실험의 가치유무적 판단에 앞서서 그와 같은 자세는 비판의 정신과 창조라는 새로움의 정신을 함유함으로써 모던이라는 현대의 시대성을 담아내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필수불가결한 현대적 징후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더욱이 탈인간성, 탈생명성에 의한 장치적 실험성에 치우쳐 있다해도, 그것은 단순히 실험을 위한 실험만은 아니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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