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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성과 신세대 문학에 대한 논의: 전통과 현대의 경계에서

by 토끼투끼 2024. 7. 21.

서정시의 역사적 자리매김에 있어서 그의 주장대로 현대의 시, 서정시를 전통적인 서정시의 개념규정에 따라 얽매지 않는다 하더라도 서정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일관된 논리는 있어야 하겠으나, 그와 같은 인식이 장르규명의 과정에서 불분명함이 문제점으로 남는다. 이광호의 환멸의 신화는 주로 메타 비평, 실제 비평, 주제 비평등으로 짜여져 있는데, 백낙청 김윤식 비판을 통해 <문제는 근대성인가>에서 보여준 모더니티에 대한 인식에서 그의 입지의 향방을 가름한다. 백낙청 비판에 있어서, 백낙청의 근대성 이론은 주체의 자기 확신의 요구와 자기 정당화의 요청에 충실함으로써 일정한 자기 동일성을 성취한 반면, 자기 자신으로부터 자신을 비판할 가능성을 봉쇄함으로써 근대성 내부의 여러 모순들과 대결하지 않는다고 본다. 김윤식 비판에 있어서는, 김윤식의 초근대론은 근대성. 근대주의와 대결해 왔던 그의 글쓰기가 가닿은 한 지점임에는 틀림없지만, 그것이 그의 비평적 회의의 절망의 중지를 의미하는 행복한 결론이 되지 못하리라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그가 근대성의 밖이라고 생각한 공간이 근대성의 아닐 수 있으며, 그의 근대성 비판과 근대의 초극 논리는 결국 그 자신의 근대성 안에서 제기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광호의 입장은 근대성 내부의 모순과 분화를 인정해야 하며,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이 근대성의 한 특질이며 동시에 탈근대의 한 조건이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 아래서 작은 근대성들의 계보학이 마련되어야 하는 것과 동시에 그것들의 관계가 탐구되어야 한다는 데에 도달한다. 그러면서 '근대성 담론이란 철저히 자기 시대의 지평안에서 자기 자신을 향해 이루어지는 비판적 실천'이라고 마감한다.

 

근대성과 신세대 문학에 대한 논의: 전통과 현대의 경계에서
근대성과 신세대 문학에 대한 논의: 전통과 현대의 경계에서

 

이광호 비평의 전략적 안목

근대성에 대한 통찰력이 이 시대를 진단하는 이광호 비평의 전략적 안목에 해당하는데, 그는 이 시대안에서 행해지는 모든 문학적 행위를 근대성의 괄호안에 포함시키고 있다. 즉 근대에 출현한 모든 텍스트는 자기 시대의 지평안에서 이루어진 관계로 근대성 담론이라는 인식인데, 근대 현대에 생성된 모든 텍스트를 모더니티 담론으로 본다면, 모더니티에서 배제된 근·현대의 텍스트는 없다는 논리의 파장을 낳는다. 가령 근대성 담론이 모더니티 뿐만이 아니라, 포스트모더니티, 그리고 초근대(Sur-modernity)까지를 다 포함한다면, 이는 한 시대속에 생성된 다양한 양태이지 엄밀히 모더니티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포스트모더니티 담론으로서 '신세대 문학'에 대한 그의 인식을 살펴보면, '신세대 문학이 어떤 현실태로든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선입관없이 받아들이는 일'에 있다고 하면서, 이제까지의 신세대 문학은 신세대의 주체들에 의해서가 아닌 신세대를 타자화하려는 언술 행위들이 이루어놓은 허구적인 이데올로기적 상일 뿐이며, 신세대 글쓰기를 전체적으로 포괄하는 거시적인 개념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러한 맥락에서 신세대 문학은 완전히 부재했다고 한다. 기성의 신세대 문학론이 허구적인 이데올로기적 상이었다고 해서 신세대 문학 그 자체가 완전히 부재했다는 지적은 이광호의 역설적 신세대 확인(자기 확인)으로 보인다. 그는 구세대(편의상 이렇게 칭한다.)에 의해 재단된 신세대문학에 대하여 저 수많은 가난하고 진지한 신세대에도 불구하고 기성세대의 의식속에 신세대라는 이미지를 구성하는 것이 압구정동 공간인 것처럼 우리 문학의 내일을 위해 글쓰기를 쉬지 않는 저 적지않은 신세대 작가들에도 불구하고, 기성 세대에게 비추어진 신세대문학의 이미지는 신세대 문학=포스트모더니즘=표절이라는 도식을 중심축으로 천박함, 가벼움, 깊이 없음, 무분별함, 몰가치성, 상업성 등의 세부적인 편견들을 거느리게 된다.

라고 비판하여, 이러한 편견들이 이론적으로 정리되지도 않은채 광범위하게 묵인되는 전제에 대한 비판과 함께 이제 신세대 문학에 대한비판은 보다 구체적이고 생산적으로 진행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진단한다.

신세대론은 전정구 • 윤여탁. 이광호를 비롯한 이 시대의 비평적 담론이 되기도 하는데, 이 세 사람의 논리를 좀더 따라가 보면, 이광호는 전정구의 경우처럼 '신세대'를 물리적 세월에 기대어, 문자 그대로 '젊은 시인, 젊은 작가, 새로운 세대'로 구분하면서, 세대론의 차원에서 '신세대 문학'의 진정성과 사이비성을 가름하고 있고, 윤여탁의 경우를 보면 신세대란 1990년대 들어 새롭게 문단에 등단한 문인들, 그 중에서도 1963년생으로 대표되는 그룹을 일컫는다고 하면서, 그들의 사고는 후기산업사회의 다원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개성을 마음껏 발휘하는 세대라는 일반적 규정속에서도, '1990년대를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또는 나이와 관계없이 시인의 길을 이제야 시작한 시인들과 그들의 작품을 통하여, 그 성취도와 앞으로의 가능성'이라고 물리적 세대론을 넘어서 문학적 태도에 따른 폭있는 인식을 보이고 있다.

 

신세대 문학의 비평적 고찰

이광호의 글에 의하면 신세대에 대한 구세대의 인식은, '80년대 세대, 혹은 90년대 세대라는, 즉 제도 문학권으로 편입된지 10년도 안되는 신세대'로 나타나는데, 문단경력에 따른 세대의 구별 및 문학논의는 이광호의 지적처럼 문학사를 투쟁사로 물들게 할 뿐인 소모전에 불과하다. 신세대들은 제도 문학권으로 편입된지 몇년이라는 잠정적으로 승인되는 세월이 지나야 자기를 밝힐 수 있다는 전제는 세대간의 논쟁이 문학에 대한, 문학을 위한, 그리고 시대에 대한 성찰을 위한 것이 아니라, 문학 제도권의 헤게모니를 위해 전제된 논쟁이라는 사실을 확인해 줄 뿐이다.

또 이광호의 글에서 문단의 헤게모니에 대한 다른 논리의 향방을 접할 수 있는데,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민족 문학의 제도적 기득권에 대한 집착은 민족 문학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하도록 발을 묶어둘 것'으로 보는 이광호의 민족문학권에 대한 비판적 논리에서 나타난다. 민족문학이 어느 문단 기득권층의 소유물일 수는 없음이다. 물론 여기에서 '민족문학'과 '민족문학론'에 대한 구별은 지적해 둬야 할 요소이다. 비평가들 마다의 민족문학에 대한 논리가 제한적임에 따라서 민족문학의 범주가 축소 또는 왜곡되는 편협함이 빚어져왔음은 거론할 필요가 없으리라 본다. 지금 여기에서 '왜 민족문학인가' 라는 이광호의 질문은 민족 문학의 역사적 존재성에 대한 근원적이고도 현실적인 사유가 절실하다는 시의성에 두고 있지만, 그의 논리는 자신의 민족문학에 대한 논리라기 보다는 문단의 기득권층을 향한 비판적 논리가 중점적이기 때문에, 본질적 민족문학을 위한 논리라는 점에 있어서는 설득력이 약하다. 분단이라는 민족의 문제와 함께 민족문학에 대한 논의가 논의아닌 투쟁화 되는 문단현실속에서 근대성이라는 범주속에 민족문학론이 어떻게 자리매김 하느냐에 대한 천착도 제시됐어야 했을 것으로 보인다.

범세계적으로, 물론 인도, 아프리카 등 비자본권·비산업권도 있지만, 우리의 사회를 중심으로 하여 논할 때, 시대는 후기산업사회 구조속에 다양한 삶의 이데올로기를 승인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향하고 있고, 이미 들어와 있기도 하다. 때문에 근대에서 생성된 모든 담론은 근대성 함유인가, 아니면 근대의 존재태로서 근대문학인가에 대한 변별은 '민족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입장과 함께 이광호의 글에서 구별되어야 할 문제로 남는다. 문단사의 관건을 떠나서 민족문학=프로문학=리얼리즘문학 = 현대문학 등으로 본 윤여탁의 명확한 입장과 이광호의 그것은 대조된다.

 

근대성 담론의 텍스트

어쨌거나 이광호의 근대성 담론의 텍스트들은 장정일, 신경숙, 주인석, 유하, 김기택에서, 그리고 <세기말, 죽음을 사는 틈> <묵시와 묵시> <몸살의 시, 배설의 생태학> <그 여자의 이미지> <세속 세계의 산책>의 주제 비평에서, 또한 서정주, 최인훈. 오규원, 김지하의 텍스트들로 설정된다. 유종호, 김병익, 남진우의 비평에 대한 메타비평에서는 이 시대의 한 전망을 인문주의적·반성적 자세로서 읽어내고 있다. 이는 그가 어떤 특정 이데올로기에 경도된 목적태로서 문학이 아니라 인본주의적 가치관에 토대한 문학관임을 드러내고 있음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신성성이 해체된, 그리고 생태계가 파괴된 현대적, 도시적 삶을 그는 환멸의 그것으로 파악하여,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세계를 생명회복 ,건강회복, 신성회복, 자연복귀로 제시하는데, 이는 전통적 세계관에 따른 처방이다.

물론 이와 같은 이광호의 처방은 전정구·윤여탁을 비롯한 이 시대의 모든 문학관계인들의 세계와 동궤이기도 한데, 이는 곧 인간이라는 생물의 본원성에 그 지향태가 닿아있음을 말하고 있다. 21세기가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지 명확히는 모르지만 현재의 우리는 전통적 가치관의 토대위에서 한 발자욱도 더 나아가지 못했음이 확인된다. 그래서 시대성은 외형만 탈바꿈을 했지 내적으로는 여전히 신화시대를 향한다는 점에서, 의식의 진보는 미래로의 그것이 아니라 과거로의 그것이 오히려 훨씬 건강하다는 사실을 재삼 확인 할 뿐이다.

현대에서 인간들의 인식의 장은 깊고 넓어졌을지라도 궁극적인 생물로서의 인간의 근원적 존재성은 초시대적 가치구조에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환멸의 신화시대라는 이광호의 현재에 대한 진단은 신성에 대한 우리 시대의 탐구, 즉 신성의 현대적 조건에 대한 탐구를 권유하는 것으로 대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