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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첫머리, 창작의 시작을 여는 힘! 영감과 표현의 예술

by 토끼투끼 2024. 11. 3.

시의 첫머리와 영감 모든 창작예술의 경우, 제일로 고심하는 것은 첫머리를 어떻게 풀어 나가느나는 점이다. 그 중에서도 시와 같은 문자예술의 경우에는 오로지 단어가 갖는 의미만으로 독자와 마주 대하는 첫머리라서 더욱 힘이 든다. 무애 양주동은 언젠가 장편소설을 쓰고자 원하였으나, 첫머리의 중요성을 절감한 나머지 세계명작의 첫머리를 수집하다본즉 맥이 빠지고 말았다는 실토를 하고 있다.

 

시의 첫머리, 창작의 시작을 여는 힘! 영감과 표현의 예술

문장의 첫 구절

글 쓰는 이는 누구든지 경험하는 일이겠지만 글에 있어서 최초의 1구같이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다. 최초의 1구-이것을 얻기 위해서 말하자면 모든 문장가의 고심초사는 자고로 퍽 큰 듯 보이고, 그만큼 이 1구는 문장의 가치에 대해서도 결정적인 세력을 가지고 있다.

백 사람의 문장가를 붙들고 물어 본다면, 그 중에 여든은 가로되 이 최초의 1구가 얼마나 고난에 찬 최대 최시의 문장적 위기를 의미하는 동시에 그의 모든 준비를 발전시키는 가장 중요한 지도자임을 말하리라.

훌륭하게 만들어진 물건이 중간에서 혹은 말단에서 잘되기 시작할 리야 없겠고, 좋은 결과, 발전을 위해서 시작이 지난하다는 것은 또한 당연한 일이니, 문장이 매양 좋게 시작된다면, 그 다음은 거저먹기라 할까. 요컨대 다음 문제는 논리적으로 그 방향만, 그것이 가야 될 길만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문장의 도는 근본적으로 발단의 예술임을 주장할 수 있으니 모든 문장이 첫 대목을 가지고 자기의 내용과 형식을 암시할 뿐 아니라 자신의 본질적 가치까지 결정해 줌에 따라 독자에게도 그것이 자연 결정적인 작용을 주게 되는 것은 우리들이 일상 경험하는 일이다.

계용묵과 김진섭의 도입부에 관한 말은 모든 언어예술에 해당이 된다. 허나 시의 경우는 발단이라는 점에서도 중요하지만, 불과 몇 백 자의 짧은 구조로 이루어지는 표현이므로 작품 전편의 성취도와 더욱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더구나 시는 영감 혹은 정신의 구체적 표현이므로 대개의 경우 첫머리의 시작은 초월적인 만남이기 일수이다. 발레리가 시의 첫줄은 신(神)에게서 온다고 한 것은 이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감이란 말처럼 초심자를 괴롭히는 걱정거리가 또 있을까. 나아가선 아예 영감이 오지 않아서 작품을 쓰지 못했다는 말도 한다. 그때마다 필자는 시인의 영감은 머리가 아니라 손끝에서 나오니 우선 펜을 들고 시작해 보라고 권한다.

영감이란 가만히 그것을 기다리고 있다 해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미 시인의 내부에 마련돼 있다. 시인에겐 다만 그것을 어떻게 빨리 불러내느냐는 문제만 남는다. 그렇다면 그것을 불러내는 시도를 해보야 할 게 아닌가.

 

 

어떻게 첫행을 써야 하는가

시에 있어서 첫머리는 독자와 만나는 첫번째 고비이다. 첫머리에서 독자를 끌어당기는 힘이 없다면 그 작품을 도대체 누가 읽어줄 것인가. 더구나 시는 20행 내외, 길어야 50행 정도이다. 그런만큼 시 독자는 인내심이 없다. 소설이라면 어느 정도 읽어나간 다음에 그 작품에 대한 판별이 서기 시작하지만 시의 경우는 그야말로 짧은 한순간의 눈길로 그 작품을 판단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많은 시인들은 그 첫머리를 특징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온갖 테크닉을 개발하게 마련이다. 아래는 그 첫머리를 유형별로 분석해 본 것이다. 다소 도식적이지만 이러한 기초사항을 눈여겨 봄으로써 자기만의 독특한 첫머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시간을 나타내는 시의 첫행은 매우 일반적이다. 특정한 시간대는 독자의 호기심을 유발한다. 흔히 4계절이나 하루 중 특정한 시간을 제시함으로써 첫행이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계절 가운데는 봄이, 하루 중에는 밤이 첫행에서 압도적으로 나타나는 시간이다. 따라서 이런 류의 첫행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보다 복잡하거나 충격적인 어귀를 쓰게 마련이다. 덧붙이자면 단순한 시간대는 피하는 게 현명하다.

 

① 봄이에요. 노랗게 목 메이는- 이태수

한밤입니다. 자연의 밤- 권달웅

② 이즈막엔- 한기팔

어느 새벽-조창환

집 한채를 몽땅 태우고 잠을 깼네 캄캄하리라 잠들 때였네-김정아

③ 6월 16일은- 김영태

 

①은 봄이나 밤을 묘사하는 상투적인 표현법에 변화를 가한 예라고 하겠다. 앞은 도치의 방법으로, 뒤는 점층의 방법으로 상투성을 벗어나고 있다.

②는불특정한 시간대를 설정함으로써 시간에 대한 상상적인 해독이 가능하도록 한 예이다.

③은 오히려 특정한 시간을 제시함으로써 유인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시의 첫행에서 공간을 설정하는 경우

시의 첫행에서 시간을 제시하는 경우보다 공간을 설정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은 빈도수를 보여준다. 자연 공간 중에서도 산이나 강이 압도적이다. 들과 골짜기, 바닷가, 또는 뜰과 나뭇가지 등등 대체로 시의 모티브가 작품 내부의 공간으로 설정되고 있다.

① 어딘가에서-윤강로

② 미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김주혜

③ 서울역에서 23시 5분에 나를 태울 때 너는 막차다- 이화숙

서울 변두리 쌍문동 103의 175-신협

 

①은 시간의 제시 방법에서 본 바와 같이 불특정한 공간을 설정함으로써 시의 융통성을 살린 예의 하나가 된다. 그러나 이러한 첫머리는 다음의 두번째 행이 더 극적이어야 하는 부담을 준다. 또 한 시인이 여러 차례 반복 사용할 수 없다.

②는 시의 주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제재(題材)로서 특수한 공간을 설정한 예가 된다. 허나 이 역시 자주 쓰면 상투적이고 도식적일 위험이 있다.

③은 시적 감흥을 위해서 약점을 무릅쓰고 구체적인 사항을 제시함으로써 오히려 독자들에게 충격을 가하고 있는 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