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는 그에 걸맞는 가락을 지니고 있다. 그런 시를 소리내어 읽다보면 가슴의 응어리가 확 풀리거나 절로 신바람이 난다. 소리의 길이와 높낮이가 어울려 지어 내는 가락의 힘이 아닐 수 없다. 주자(朱子)의 말을 빌면 소리란 기(氣)의 성질을 지니고 있고, 사람은 기(氣)와 이(理)의 성질로 이루어져 있다 한다.
사람의 기(氣)와 소리의 기(氣)가 어울릴 때 이(理)가 그것을 받아들이면 쾌감을 자아내는 악음이 되고 물리칠 경우에는 불쾌감을 빚어 내는 소음이 된다고 한다. 노래란 바로 이 (理)의 받아들임인데, 노래에서 비롯된 시는 이(理)의 바탕을 이루는 정신을 추구한 결과인 만큼, 지금에 와서도 가락이 시의 한 기능을 차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많은 시인들은 그러한 가락을 자아낼 수 있는 시문의 음성적 형식에 주목해 왔다.
운율의 미학과 시의 가락: 소리로 그려진 시의 구조
사람의 청각기능은 140폰에 지나지 않는다. 140폰은 제트기의 소음에 견딜 수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100명의 합창대가 빚어 내는 소리가 100폰의 상태라 한다면, 사람의 청각기능은 지극히 제한된 상태에 불과하다. 더구나 문자의 발음폭은 60폰에서 30폰 사이에 지나지 않는다. 나뭇잎이 흔들리거나 떨어지는 소리가 20폰에서 10폰 사이라 하면 시의 가락이 운신할 수 있는 폭이 짐작되고도 남는다.
시인들은 처음에 일정한 소리의 강도가 되풀이되는 데서 가락이 발생하는 것을 깨우쳤다. 따라서 문장의 요소요소에 같은 음을 배치함으로써 가락의 효과를 상승시키고자 했으며, 이러한 배치를 운이라고 일컬었다. 두운이니 각운이니 하는 용어는 이러한 음이 되풀이되는 자리매김을 가리킴이고, 압운이란 자리매김 되풀이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시인들은 나아가, 이러한 운이 일정한 틀 속에서 더욱 효율적인 긴장관계를 조성한다는 것을 찾아낼 수 있었다. 시문의 길이를 일정하게 유지하자는 것이니 한시의 언시, 7언시, 서양시의 소네트와 같은 틀이 이로써 발생되었다. 시인들의 운율에 관한 이러한 착안과 연구는 우리가 근대시라고 부르는 자유시의 태동이 있기까지 기본 시형식으로 존재해 왔다. 이때까지의 시문은 곧 운문으로서 산문과 대비된다. 허나 자유시가 발생하면서 운문시는 급속히 세력을 잃고 말았다.
자유시의 탄생과 한국어 시의 내재율 발전
자유시는 정형의 틀에서 시를 해방시킴으로써 자유로운 정신의 추구에 집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종래의 운문시가 내세울 수 있는 가락까지도 내재율이란 형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시가 노래에 견주어 소리로서의 주술성이 떨어진다면, 그 주술성을 강조하는 장치로서 소리에 그림이며 빛이며 향기와 같은 다양한 첨가재료를 개발할 필요가 있는데, 자유시의 형식에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그러한 개발을 추구할 수 있는 장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조지훈의 말마따나 '눈으로 읽으면 귀에 리듬이 울려 오고, 귀로 들어도 눈에 모습과 빛이 떠오르는 시'를 자유시의 시인들은 시의 이상으로 삼게 된 것이다. 이 자유시로 넘어오면서 시의 발전은 낙관시되었다. 까다로운 운법이나, 음수율, 음보율 따위의 방해물을 제거했을 뿐 아니라 상상력이라는 발전의 원동력을 가속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형식상의 변혁은 한국어 시의 발전에 최적의 토양을 제공한 셈이다.
한국어 시는 아다시피, 한국어의 특성으로 인해 구미 시나 한자 시의 운을 발생시키기에 기능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난점이 많았었다. 기능적으로는 구문형식이 달랐고, 시간적으로는 5백 년 정도의 표기기간에 불과했으며 사회적으로는 변두리어로 홀대받았던 것이다.
따라서 한국어 시는 한글 이전에는 이두문자의 표기나 한자 번역표기로나 맥을 이을 수밖에 없었고, 한글창안 이후에는 사회의 주류에서 벗어나 있는 여성이나 일부 관심 있는 소수의 시인들에 의해 다뤄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 저간의 실정이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시의 본류라 할 수 있는 정신의 발전은 한자어 시로서 꾸준한 성장을 했으니. 한국의 시는 남의 옷 속에서나마 품위를 지킬 수 있었던 셈이고, 그러한 전통이 지금에까지 이어져 왔기에 한국어 시의 찬란한 개화가 가능했다고 생각된다.
일부 학자에 따라서는 한국어 시가 서구 시의 모방연습이므로 그 발전을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그러한 주장이야말로 시가 형식상의 것이라는 단견에 불과하다. 형식의 굴레를 벗어 던지게 된 이래 한국어 시가 내재율의 가락을 급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던 동인은 바로 한시에서나마 내용의 훈련을 지속화하였던데 기인하니. 만해나 청마나 육사와 같은 초창기의 시인들이 별다른 습작기차 없이 우수한 시작품을 생산할 수 있었던 예가 바로 그러하다.
한국어 시의 내재율과 자유로운 감각의 확장
한국어 시는 내재율이라는 면에서 또한 구미 시나 한자어 시보다 풍요한 자원을 갖고 있다. 종래의 제약이 도리어 부가가치로 전환될 수 있었다. 운이 사라진 이상 기능적인 구문의 제약은 오히려 허사와 첨가어의 풍부한 활용성으로 기능이 배가되었고, 시간적인 제약은 언어의 자유로운 발전을 약속할 수 있는 기능성으로 바뀌었으며, 사회적인 제약은 그동안 여성이라는 사용계층의 편향적 기반으로 인해 생활어와 감각어의 세밀한 발전을 통해 파생어의 군락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가 언어와 사상의 소산이라면 그 두 가지 점에서 한국어 시는 다같이 그 전도를 보장받았다고 할 수 있다.
내 너를 찾아왔다. 순아, 너 참 내 앞에 많이 있구나. 내가 혼자서 종로를 걸어가면 사방에서 네가 웃고 오는구나. 새벽닭이 울 때마다 보고 싶었다... 내 부르는 소리 귓가에 들리더냐. 순아, 이것이 몇 만시간이냐. 그날 꽃상여 산 넘어서 간 다음 내 눈동자 속에는 빈 하늘만 남더니, 매만져 볼 머리카락 하나 없더니, 비만 자꾸 오고......燭불 밖에 부엉이 우는 돌문을 열고 가면 강물은 또 몇천린지 한 번 가선 소식 없던 그 어려운 주소에서 너 무슨 무지개로 내려왔느냐. 종로 네거리에 뿌연이 흩어져서 뭐라고 조잘대며 햇볕에 오는 애들. 그 중에서도 열아홉살쯤 스무살쯤 되는 애들. 그들의 눈망울 속에, 핏대에 가슴 속에 들어앉아 순아! 순아! 순아! 너 인제 모두 다 내 앞에 오는구나
-서정주 <회복>
이 시에서 누가 3.4조며 7.5조의 음수율이며 2음보 3음보의 음보율을 찾을 수 있으랴. 형태상으로는 산문시에 분명하지만 소리 내어 읽게 되면, 감정의 변화와 장면의 변화가 일치되어 절로 소리에 가락이 붙고, 눈에는 종로거리에서 있는 시인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가. 주어나 허사가 생략돼도 좋은 구문, 인칭대명사의 복합개념화, 허사의 변형과 여성어의 다채로운 활용이 부활의 내재율로 창조됨으로써 시의 가락은 한국어 시의 무대에 새로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로운 내재율의 흐름은 서정주에서 비롯되어 이른바 60년대 시인이라고 통칭되는 박제천·정진규 등의 산문시를 거쳐 90년대의 신인들에 이르러 활짝 꽃을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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